120416 전파하라 회개를, 그리고 정의와 공의의 예수를! – 마 3:1-12
오늘 우리는 교회 설립 1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시간이 참 빠릅니다.
1년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아도 참 여러 일들이 있었어요.
이런 저런 모양으로 예배 드리고 전도도 하고,
야외 모임도 갖고 수련회도 하고요.
그런데 마냥 감상에 빠지기엔 지금 우리 사회에 닥친 현실이 막막하기 그지 없습니다.
제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혼란한 정국에 대해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우리 교회의 2016년 표어는 “한마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는 교회” 였습니다.
이 표어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고, 그렇게 계속 선포하길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맞닥트린 어두운 현실 속에서 우리가 선포해야 하는 하나님의 구원은 무엇일까요?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선포해야 할지 모르는, 마치 길을 잃은 것 같은 지금 상황에서 말입니다.
아마 이 상황을 표현하기엔 이 성경 말씀이 딱 인 것 같아요.
사 59:14 “정의가 뒤로 물리침이 되고 공의가 멀리 섰으며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직이 나타나지 못하는도다”
오늘 본문을 생각해 보면, 아마 시대 상황이 오늘 날과 비슷했을 겁니다.
로마 식민지배 상황에서 사두개인들을 비롯한 지도자들은 오히려 권력을 등에 업고 종교의 이름으로 백성들을 착취했습니다.
우리가 사두개파에 대해 공부할 때 그들의 특징은 무엇이었습니까?
권력지향적이었고, 대제사장을 배출한 가문 중심이었고, 그런 권력을 지키기 위해 내세의 삶과 부활을 부정하고 철저히 현세 중심의 삶을 이어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겉으로는 종교 지도자들이었지만 이들이야말로 로마 정부의 부역자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반대급부로 경건한 바리새인들을 따르려 했지만 바리새파라고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습니다.
백성들의 존경을 등에 업은 바리새인들은 매우 교만했습니다.
또한 바리새파 사람들 중에서는 성경의 내용은 잘 모르는 소시민들이 많았기 때문에 자신들 바리새파 공동체의 규정을 더 신뢰하여 그것으로 다른 이들을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
후에 예수께서는 이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맹인이라고 비판하셨습니다.
마 23:23-26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이런 자들이 지도자들이라고 하니 나라의 모습이 어땠겠습니까?
그 나라와 민족이 하나님께 선택 받았다고 하지만 과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나라였을까요?
스가랴 선지자는 이렇게 고발합니다.
슥 7:9-13 “9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10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11 그들이 듣기를 싫어하여 등을 돌리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12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그의 영으로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진노가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나왔도다
13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한 것처럼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이사야 선지자의 고발에서도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 1:14-15”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하나님께서 예배공동체로 이스라엘을 부르셨지만 오히려 그들의 죄악 때문에 그들의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는 절망적인 모습을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마저 그의 백성의 예배를 받지 않으시겠다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다른 이들을 향해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할 수 있었을까요?
그래도 인자와 자비가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결정적인 카드를 준비하십니다.
그리고 그 카드를 준비하는 자를 세우십니다.
바로 외치는 자의 소리,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는 자, 사막에서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는 자, 세례 요한입니다.
그가 외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2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회개하라고 말합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요.
여기에서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르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통치가 임한다는 말이고,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7절에 보시면 세례 받으러 나오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10절에서는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다고 말합니다.
급박합니다.
시급합니다.
당장 회개하지 않으면 천국은커녕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됩니다.
회개란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가는 것인데,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 전에 빨리 그 길을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심판을 피할 수 있다는 말이 되겠지요.
특별히 지도자들을 향해 선포된 세례 요한의 회개 외침은 개인의 죄 뉘우침이나 구원의 문제를 넘어서서
가난한 자들, 소외된 자들을 탄압하며 그들에게서 착취하던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가 악에서 돌이켜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공의를 이뤄가라는 강력한 외침입니다.
아까 스가랴 7장과 이사야 1장 말씀에서 보았듯이, 그들은 약한 자의 고통을 못 본 체하고, 그들의 신음 소리에 귀를 닫았으며, 사회적 약자들이, 또는 보통 사람들이 삶의 무게에 못 이겨 악 소리를 내고 있을 때 그 악 소리를 음악 삼아 자신들의 배를 불리고 등을 따뜻하게 하던 자들이었습니다.
즉,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하나님 나라의 정의나 공의는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겁니다.
정의외 공의가 무너진다는 것을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지도자들이 국민들의 혈세를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 사용하면 어떻게 됩니까?
국가 예산이 꼭 사용될 곳에 사용되지 못하고 낭비되는 동안 국민들의 빚은 쌓여만 갑니다. 악 소리가 나는 거예요.
아침 일찍 나가 일하다 야근까지 하고 투 잡을 뛰어도 도대체 먹고 살기 힘들어 죽겠다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나오잖아요.
분명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일할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그 일의 정당한 대가를 또한 받아야 하지만
오히려 권력자들의 돈 장난 앞에서 일반 국민들은 더 큰 좌절만 느낍니다.
말씀도 이런 부패한 권력자들을 고발합니다.
시 58:1-2 “통치자들아 너희가 정의를 말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 인자들아 너희가 올바르게 판결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
아직도 너희가 중심에 악을 행하며 땅에서 너희 손으로 폭력을 달아 주는도다”
한마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는 교회인 여러분,
오늘 날과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할 수 있습니까?
가난한 자를 더욱 가난하게 만들고,
억울한 자를 더 억누르며,
소외된 자를 더 멸시하고,
있는 자들의 배만 채우는 이 사회를 향해,
우리가 전파할 수 있는 것은 강력한 회개의 메시지 입니다.
회개하라고 외치십시오.
가던 길을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치십시오.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전파하십시오.
오늘 본문 1절에서 사용된 ‘전파’라는 단어 κηρύσσω /kerysso/ 는 말 그대로 공공장소에서 모든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썩어져 가는 사회를 향해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끝내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곧 이 땅에 다시 오시는데,
회개하고 그의 뜻에 순종하면 구원이요,
거부하면 무서운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우리는 전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의 등장을 예고하면서 했던 12절의 말씀은 이제 우리의 선포가 되었습니다.
12절에서 뭐라고 증거합니까?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그들에게 회개를 선포함과 동시에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 기다리며 정의와 공의가 이뤄지는 하나님 나라를 꿈꿔야 합니다.
그 나라는 함께 읽었던 이사야 말씀에서 증거합니다.
사 11:1-10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주님 오실 때까지 한마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그리고 회개를 선포합시다.
정의와 공의가 이뤄지는 하나님 나라를 전파합시다.
그렇게 복음을 전파하며 주님 다시 오실 길을 준비하고 있으면 우리 주님 오셔서 끝내 이루실 것입니다.
사 9: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