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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16 무엇을 어떻게 간청할까? – 눅 18:1-8


여러분께서 기도해 주셔서 세미나에 잘 참석하고 왔습니다.

계속되는 강의에 몸이 근질근질하기도 했습니다만,

목회의 소명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목회 현장을 돌아보는 귀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거기서 제게 숙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말을 꼭 전해야 한다는 건데요,

그건 바로…

‘교회를 개척하는 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최고의 전도 방법인데 그런 개척교회에서 함께 신앙 생활하는 여러분은 최고의 동역자요, 전도자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자랑스러운 성도들이십니다.’

이런 여러분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하게 와 닿았던 것은 바로 기도에 대한 강조였습니다.

많은 강사분들이 2시간 이상 기도하라는 말씀도 하셨고요,

믿음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하신다면서 경험을 빗대어 여러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강의하신 분들이 적어도 20년 이상 목회하시고 소위 중대형 교회의 목사님들이셨기 때문에 기도가 건강한 교회 성장의 원동력이라는 주장은 신빙성이 있어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차에 기름 넣을 돈도 없고 아이가 아파도 병원에 갈 돈도 없을 정도로 가난한 시골 목회를 시작했지만,

기도하면서 간구하니까 훗날 이렇게 성장하는 교회를 보게 되더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듣는 가운데 2주전 우리 교회 성경공부 시간에 나누었던 내용과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무익한 종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김진보 형제께서 질문하길, 우리더러 무익한 종이라고 하는데, 다른 한 편으로는 소원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라고 하지 않냐 는 것이었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무익한 종과 간절히 소원을 바라는 것이 모순 같다는 말이었습니다.

기도하는 게 맞지요.

그것도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맞습니다.

숱하게 들었던 기도의 간증들도 그렇고,

오늘 본문의 처음 시작도 ‘항상 기도하고..’ 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여전히 궁금증은 남죠.

도대체 얼마나 매달려야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고,

그렇게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우선 기도하는 자세에 대해서 살펴볼까요?

먼저 아까 읽어주신 구약 창세기 말씀을 떠올려 보겠습니다.

형 에서를 속이고 축복권을 가로챘다가 도망쳤던 야곱이 오랜 타향 생활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형이 군사들을 이끌고 자신에게 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죠.

어렸을 때도 형이 너무 무서웠는데 그 형이 400명의 군사들까지 거느리고 있으니 얼마나 무섭겠어요.

이제 강을 건너면 형을 만나는 건데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결국 밤에 일어나 가족 모두 앞서 보내고 홀로 어떤 사람과 씨름을 하기 시작합니다.

밤새 씨름 하다가 날이 새서 그 사람이 가려고 하는데 야곱이 안 놔주는 거에요.

안 되겠으니까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뼈를 칩니다.

그래도 야곱은 붙잡습니다.

‘나를 축복하기 전에는 절대 못 보내줍니다.’

결국 이 사람은 야곱을 축복하고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바꿔주죠.

속이는 자에서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허벅지 뼈가 부러질지언정 결코 자신의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간절함이 있었어요.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한 과부의 간청하는 모습이 나오지요.

이 과부가 꽤나 억울한 일이 생긴 모양입니다.

그래서 재판관에게 가서 자신의 일을 해결해 달라고 하는데요.

문제는 이 재판관입니다.

2절 말씀대로,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는 재판관이에요.

같이 2절 말씀 읽어볼까요?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무시하는 사람이니까 말 그대로 자기 맘대로 인 사람인 거에요.

예수께서는 이 자를 불의한 재판관이라 하십니다 (6절).

이런 사람에게 힘 없는 과부의 말이 들리기나 하겠어요?

요즘도 보세요.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고 하지만 과연 그렇습니까?

연일 매스컴 이슈 중 하나는 법보다 위에 있는 사람들의 권력 놀음 아닙니까?

법을 지켜야 할 사람들이 법을 마음대로 악용하고

이런 권력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법을 공정하게 판단하고 재판해야 할 사람들이 왜곡된 판정을 내립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과부처럼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입니다.

이것은 성경 속 시대에도 매 한 가지였고요.

더군다나 본문 속의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였으니까 더욱 그랬겠지요.

재판관 자신도 알아요.

4절에 보면,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라고 속으로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재판관이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만 과부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계속 찾아간 거에요.

귓등으로도 안 듣는 재판관에게 말하고 또 말하는 거에요.

재판관에게 간다는 이 표현의 뜻은 거의 기계적으로 반복해서 찾아간다는 거에요.[1]

그러니까 결국 재판관이 항복하고 맙니다.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이 막무가내가 끈질긴 간청에는 손을 들고 만 거죠.

이 비유를 말씀하시고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런 불의한 자도 소원을 들어주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밤낮으로 부르짖는, 택하신 백성의 권리를 찾아주시지 않으시고, 모른 체하고 오래 그들을 내버려 두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얼른 그들의 권리를 찾아 주실 것이다.” (7-8a절, 새번역).

여러분은 진정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심을 믿으십니까?

오늘 함께 읽은 시편 찬양이 우리의 이런 믿음을 대변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시 121:1-4).

우리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변함없이 신실한 분이시고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주의 백성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이 아버지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아무 기도나 해도 될까요?

우리 인생의 성공과 명예와 부와 쾌락을 위해서 기도해도 될까요?

약 4:3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잘못 구하면 응답 받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기도는 사실 원한에 사무친 기도입니다.

그것도 “택하신 자들의 원한”으로 가득 찬 기도입니다.

택하신 자들은 누구고 이들은 왜 원한으로 가득 찼을까요?

1절 말씀을 다시 보시죠.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1절에서 “그들”은 제자들입니다.

지금 제자들에게 간청하는 기도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는 거니까 택하신 자들 역시 제자들이라 할 수 있겠죠.

낙심하지 말라 하신 것은 그들에게 닥칠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원어 혹은 영어성경에서 보면 오늘 본문이 “그리고”로 시작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오늘 본문이 앞장의 내용과 연결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을 한 장 앞 17장으로 넘어가 볼까요?

17장 초반에서 무익한 종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 보았고

그 뒤에 나병에서 고침 받은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이 후 20절부터 하나님 나라는 우리 안에 있는 것인데, 이를 이루실 예수께서 고난을 받고 버림 받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세대, 즉 예수를 죽이는 이 세대는 노아 시대의 사람들과 같아서 악하고 쾌락을 쫓는 세대이기에 인자가 다시 오시는 날 이 세대는 무서운 심판을 받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노아 때의 사람들과 같이 자신들의 쾌락을 쫓으며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는 이 사람들이 예수의 말씀을 전하는 제자들에게 잘해줄 리 있습니까?

핍박하고 능욕하고 침 뱉고 죽이겠죠.

마24: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눅21:17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실제로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 이후 예수의 이름을 전할 때마다 무서운 핍박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예수의 열두 제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말세가 가까워 올수록 믿는 자들을 향한 핍박은 거세질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종교의 자유가 있어서 핍박이 없다고요?

오히려 기독교를 개독이라 비판하고 조롱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직도 예수 믿으라고 하면 너나 잘 믿으라고 욕하고 침 뱉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교회가 복음으로 세워지는 것을 싫어하고 방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교회 다닌다고 하면서도 복음이 아닌 자기 욕심을 쫓아 살기에 오히려 복음대로 사는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모욕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이런 자들이 신실한 주의 제자들을 핍박합니다.

핍박만 있겠습니까?

우리를 미혹하는 것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가지고 장난치는 이단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기적을 행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신 13:1-2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막 13: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살후 2:9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이런 핍박과 미혹을 견뎌내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원한이 사무칠 정도라는 거에요.

이렇게 예수를 제대로 믿고 복음을 전하는 삶은 결코 편안한 삶 대신 고난의 길, 좁은 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국 이런 핍박과 미혹 앞에서 주의 제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밤낮 부르짖으며 원한을 갚아달라고 기도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 마지막에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는 말씀이 있습니다.

풀어 쓰자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새번역) 이라는 겁니다.

핍박과 미혹으로 인해 예수가 오시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넘어지는 사람들이 있어요.

믿음을 저버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왜냐하면 이 핍박과 미혹이 사람보기에는 너무 강력하거든요.

그것도 한 번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 믿음을 흔들거든요.

결국 8절 마지막 말씀은 사람들이 예수를 기다리다 핍박과 미혹에 넘어지는데 과연 그 가운데서 믿음을 지킨 사람이 과연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오랜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믿음 저버리지 않고 주를 사모하는 자를 찾으신다는 겁니다.[2]

종합해 보면,

오늘 본문은 단순히 우리에게 기도의 자세를 알려준다기 보다 이 말세에 예수의 이름으로 핍박 받으면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끝까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릴 수 있냐는 믿음의 자세에 대한 아주 강력한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마지막 때는 다가오고 있고

정확한 날과 시간은 알 수 없지만 예수께서 다시 오실 날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만 그 때가 다가옴에 따라 우리의 구원을 방해하고 믿음을 흔들려는 악한 사단의 공격도 심해질 것입니다.

때로는 무서운 핍박이나 조롱과 박해로,

때로는 달콤한 유혹으로 미혹하면서

우리의 관심을 예수로부터 멀어지게 하려고 애쓸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야곱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과부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주님 안 오니까 영영 안 오실 것처럼 답답하다 할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있으면 주께서 번개같이 도둑같이 오셔서 여러분의 원한을 갚아 주시고 여러분의 믿음을 상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히 10:35-39)

[1] Biblical Studies Press, The NET Bible First Edition Notes (Biblical Studies Press, 2006), Lk 18:3.

[2] Biblical Studies Press, The NET Bible First Edition Notes (Biblical Studies Press, 2006), Lk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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