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916 뭣이 중헌디? – 눅 8:26-39
최근 한국 영화 중 흥행을 달리는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곡성’이라는 영화인데요.
한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의문의 죽음들을 둘러싼 스릴러입니다.
거기에서 나온 한 대사가 지금 아주 화제입니다.
인터넷이나 방송에서 자주 접하는 그 대사는 바로 이것입니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한지도 모름서. 뭣이 중하냐고”
저도 아직 이 영화를 안 보았기 때문에 이 대사가 영화 중 어떤 의미를 갖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만
굳이 영화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 대사 자체가 주는 무게감은 상당합니다.
…과연 무엇이 중요할까…
현재 나의 삶에서, 일, 가정, 그리고 신앙에서 무엇이 중요할까?
혹시 이런 물음을 가져보신 일이 있으신가요?
때론 이 우선순위의 문제가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여도
가만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중요하지 않은 것, 사소한 것에는 온 힘을 다 쏟고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는 경우가 적잖게 있음을 보게 됩니다.
과연 우리 주님은 그 사역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셨을까요?
그리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은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던 것일까요?
이것들을 함께 고민하며 오늘 이야기를 풀어가 보겠습니다.
지난 주에 살펴보았던 사건,
즉 죄인이라 불리던 한 여인이 예수의 발을 눈물로 적셔 그 머리털로 닦고 값비싼 향유를 부은 일이 있은 후에
예수께서는 갈릴리에서 제자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가자’ 하시면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십니다.
이 장면은 오늘 본문 앞 22-25절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오늘 본문의 시작이 이 이야기라고 보셔도 되겠습니다.[1]
그렇게 배에 올라 호수 건너편으로 건너가던 예수님과 그 제자들은 광풍을 만납니다.
제자들은 죽게 되었다고 아우성입니다.
그 소리를 들으시고 예수께서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까 잠잠해 졌습니다.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도착한 곳이 거라사인의 땅,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곳입니다.
이 지역은 갈릴리 호수의 남동쪽에 있던 이방인의 땅이었습니다.[2]
그 증거 중의 하나가 돼지를 치고 있던 것입니다.
정통 유대인들은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생각해서 기르지도 먹지도 않았거든요.
그러니 이 거라사인의 땅이 이방인의 통치 지역이라는 것에 더욱 신빙성을 갖습니다.
또한 유대인이었던 예수께서 이방인의 땅에 가신 것이 조금 이례적인 것은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잘 상대하지 않았거든요.
어쨌든 그곳에 예수께서 도착하셨을 때 누구를 만납니까?
귀신 들린 자를 만납니다.
오늘 본문의 설명대로라면 이 사람의 상태는 아주 심각해 보입니다.
옷을 입지 않은지 오래되었고요
집에 들어가기는커녕 무덤 사이에서 삽니다.
이 사람을 지키려고 쇠사슬과 고랑으로 메어놔도 귀신이 한 번 발동을 걸면 얼마나 힘이 센지 이런 것들을 다 끊어버리고 다시 광야로 뛰쳐나가곤 했답니다.
실제 이런 사람이 동네에 있다면 참 무서울 법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험악하게 굴던 사람이 예수의 앞에 와서 바짝 엎드립니다.
예수께서 그 사람을 괴롭히는 귀신을 보시고 나가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29절).
엎드려서 뭐라고 소리칩니까?
28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의 말 중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라는 말은
τί ἐμοὶ καὶ σοί (ti emoi kai soi) what to me and to you? 라 하여 관용어구처럼 쓰이는 말이었다고 해요.[3]
무엇인가 조금 성가시거나 관여하기 싫은 일에 끼게 되었을 때 이 말을 했다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이거 나한테 왜 이럽니까? 나 좀 내버려두십시오’ 라는 말입니다.
같은 사건을 기록한 마태복음 8:29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귀신도 예수께서 그들을 심판하러 오심을 알았던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명령하셨을 때 ‘아직 내가 심판 받을 때가 멀었는데 당신이 와서 상관합니까? 좀 내버려 두십시오.’ 라고 대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예수께서는 귀신의 이름을 물으시죠.
그러자 자신의 이름을 ‘군대’ 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많은 귀신이 있었기에 ‘군대’라고 했을까요?
이 군대의 원어는 λεγιών / Legion 인데요, 로마 군대의 한 단위였습니다.
로마 시대 legion 이라 하면 약 1,000명에서 많게는 약 6,000명으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4]
이 많은 수의 마귀가 한 사람 안에 있었다고 생각하니 정말 끔찍하지 않습니까?
쇠사슬 끊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겁니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수의 귀신들이 지금 누구 앞에 무릎을 꿇고 벌벌 떨고 있습니까?
예수의 앞에서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제발 무저갱으로 들어가라고는 하지 마십시오.’ (31절)
이 무저갱은 無底坑, abyss 바닥이 없다는 거에요.
즉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지옥을 가리킵니다.[5]
요한계시록 20장에서 하나님의 천사가 사탄을 결박하여 이 무저갱에 가두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영원한 지옥에 지금 당장 자신을 가두지 말아달라고 애원합니다.
다시 한 번 귀신의 입을 통해 예수께서 이 귀신들을 심판하시는 분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대신 가게 해 달라고 한 곳이 어디입니까?
산에서 먹고 있던 돼지 떼였어요.
역시 동일한 사건을 이야기한 마가복음 5장에서는 약 2,000 마리의 돼지들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막 5:1-20).
예수께서 허락하시자마자 군대 귀신이 돼지 떼에 들어가 호수로 내리달아 모든 돼지가 몰살하고 맙니다.
마귀가 얼마나 파괴적인 존재인지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입니다.[6]
일이 이렇게 되자 정작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돼지를 치던 자들이에요.
깜짝 놀라 마을로 도망가서 다른 이들에게 일어난 일을 말하죠.
그래서 사람들이 진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왔더니 그 미처 날뛰던 사람이 온전하게 앉아 있는 거에요.
바로 예수의 발 앞에 말이죠.
그런데 이 놀라운 상황 앞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예수께서 그 지역을 떠나주시길 구합니다.
귀신들렸던 사람이 나은 것과 상관없이
정작 자신들의 재산이 완전히 날아가 버렸잖아요.
물론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요즘 산지 가격으로 110 kg 돼지가 40만원 선에서 거래된다고 합니다.[7]
40만원 x 2,000 마리 = 800,000,000원 / 8억원 이 한 순간에 없어졌으니까 마을 사람들이 아연실색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합니다.
사실 이 거라사 사람들에게 한 명의 귀신들린 사람은 자신들의 재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큰 문젯거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낫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돼지 떼가 모두 죽은 것은 큰 문제였고
결국 이 일의 원인, 즉 귀신들린 자를 낫게 한 예수가 자신들의 곁을 떠나야 한다고 결론내렸던 것입니다.
저는 이 마을 사람들의 반응에서 28절의 귀신의 반응과 유사한 점을 보았습니다.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라고 따졌던 마귀처럼
‘당신이 대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길래 갑자기 우리 마을에 와서 저 많은 돼지들을 다 죽이고 이 난리를 친 단 말이오?
당장 우리 마을에서 떠나시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참 비슷하게 보입니다.
이제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한 가지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만났을 때,
그리고 예수의 복음과 맞닥뜨렸을 때,
일어나는 반응은 대체적으로 두 가지로 나뉩니다.
38절에서처럼 예수를 따르겠다고 결심하거나
나 좀 내버려둬! 당장 내 곁에서 떠나! 라고 소리지르거나…
예수와 복음을 만났을 때
처음에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합니다.
깜깜한 동굴 속에 있다가 갑자기 햇빛을 쬐면 눈을 찡그리게 되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익숙해지면 나는 더 이상 어둠 속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빛에 거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뻐하게 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처음에 일었던 거부반응이 끝까지 가는 경우입니다.
예수를 마을 밖으로 쫓아낸 거라사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끊임없이 복음의 빛이 내 마음에 비취건만 예수를 향해
τί ἐμοὶ καὶ σοί (ti emoi kai soi)
그건 나랑 상관없는 일이니까 당신이나 잘 하시오.
그리고 제발 나 좀 내버려 둬!
라고 소리칩니다.
이 후자의 경우 여러분과 상관없다고 느껴지실지 모르겠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예수 믿었더니 포기해야 되는 것이 왜 이렇게 많은지…
꼭 목사라서가 아니에요.
예수 믿었더니 하면 안 되는 것도 왜 이렇게 많고 조심해야 할 것도 많은지 어떨 때는 괴롭기까지 해요.
그런데 거기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향해 ‘대체 나랑 무슨 상관이 있길래 이래요? 나 좀 내버려둬요!” 라고 소리지르는 것이 맞을까요?
참 역설적이게도,
예수를 만나면, 그리고 그의 복음을 만나면
고통스럽고 아픈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 지난 주에 외우기로 했던 갈라디아서 말씀 기억나십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나는 죽는 거잖아요.
얼마나 힘들고 아픕니까?
내 마음대로 즐기고 살던 것 다 끊어야 되는데 얼마나 괴로워요?
내 가진 것을 나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해 써야 하는데 이거 인정하기가 얼마나 힘이 듭니까?
하지만 여기 주의 분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막 10:29-30)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거라사 지역 사람들이 끝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냐며 예수를 마을 밖으로 쫓아냈어요.
당장은 그 많은 돼지들을 잃어서 화가 났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이 청년… 이 마을 사람들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친구이고, 누군가의 이웃이었을 것 아닙니까?
그랬던 그가 더러운 귀신에서 해방되었음에도 그들의 눈에는 그게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저 돼지 떼…
그들에게는 한 영혼의 회복보다 자신들의 재산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반면, 예수께서 광풍이 이는 바다를 건너시고
돼지 떼 이천 마리를 아낌없이 죽이면서까지
원하셨던 것이 무엇입니까?
이 청년의 회복!
오로지 이 청년 하나 회복시키고자 많은 위험을 감수하고 이 거라사까지 오셨던 겁니다.
여러분,
정말 무엇이 중요합니까?
사람이 중요하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더 소중한 거잖아요.
하지만 이 시대라고 어디 다른가요?
돈 아낀다고, 조금 더 벌겠다고 그러다가
엄한 청년들이 죽어나가는 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아닙니까?
진정 무엇이 중요합니까?
한 영혼을 아끼시는 예수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면 좋겠습니다.
예수 때문에 돼지 떼를 포기해야 한다고 울부짖지 마십시오.
대신 억눌리고 핍박 받고 좌절하고 있는 그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리고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가장 값진 것을 버리신 예수를 생각하고 그 분이 내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 그들에게 전하십시오.
죽은 자를 일으켜 세우시고
귀신들린 자를 온전케 하며
억눌린 자에게 자유를
절망과 고통 중에 있는 자에게 참 소망을 주시는 그 예수를 전하십시오.
‘예수가 나와 상관이 없다’가 아니라 ‘나는 예수로 산다’라고 외치는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1] 개역개정에서는 kai(and/so/then)의 번역이 생략되어 있다. 26절은 풍랑을 잠잠케 하신 것의 바로 다음 이야기이다: “And.” Here καί (kai) has been translated as “so” to indicate a summary and transition in the narrative. Biblical Studies Press, The NET Bible First Edition Notes (Biblical Studies Press, 2006), Lk 8:26.
[2] Biblical Studies Press, Lk 8:26.; This location is thirty-three miles southeast of the Sea of Galilee in the mountains of Gilead, Pheme Perkins and Mark Allan Powell, “Gerasa, Gerasenes,” ed. Mark Allan Powell, The HarperCollins Bible Dictionary (Revised and Updated) (New York: HarperCollins, 2011), 323.
[3] Biblical Studies Press, Lk 8:28.
[4] Pheme Perkins, “Legion,” ed. Mark Allan Powell, The HarperCollins Bible Dictionary (Revised and Updated) (New York: HarperCollins, 2011), 547.; https://en.wikipedia.org/wiki/Roman_legion
[5] Mark Allan Powell, “Abyss,” ed. Mark Allan Powell, The HarperCollins Bible Dictionary (Revised and Updated) (New York: HarperCollins, 2011), 8.
[6] Biblical Studies Press, Lk 8:33.
[7] www.ekapepia.com/user/priceStat/distrPricePork.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