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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16 ‘사랑하기 때문에’ 요 16:12-15


우리는 지난 주 성령강림주일을 맞아서 예수께서 약속하신 또 다른 보혜사, 즉 성령께서 오셔서 하시는 일을 살펴보았습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바로,

우리가 예수를 더욱 사랑하여 그의 계명을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통해 그의 교회를 세우셨음을 사도행전 2장을 통해 보았습니다.

즉, 성령 충만은 사랑 충만이요 교회를 세우는 역사임을 보았습니다.

오늘 역시 예수께서 어떻게 성령에 대해 말씀하셨는지 살펴보고자 하는데요,

특별히 삼위일체 주일을 맞이하여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

이 세분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도 살펴보고자 합니다.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주의 크신 은혜가 함께 할 줄 믿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떠날 것을 말씀하시면서 성령을 약속하시는 마지막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총 세 번에 걸쳐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 약속하시는데요,

첫 번째가 약 3주전에 보았던 14:25-26,

두 번째가 지난 주에 보았던 14:16-17,

그리고 세 번째가 15:26부터 오늘 본문이 포함된 16:15 입니다.

그런데 세 번의 말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성령님을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분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4:16 그(아버지)가…너희에게 주사

14:26 아버지께서 내(예수) 이름으로 보내실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

이라고 아버지와 함께 계시되 아버지에게서 우리에게로 오시는 분임을 설명하십니다

누가복음 10장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22절, 개역개정)

더불어, 단독적으로 일하시는 분으로 묘사하지도 않습니다.

14:26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5:26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16:13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를 나타내고 그의 가르침을 깨닫게 하는 일을 하신다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이 특징들, 즉 성령께서 오시되 아버지께로부터 오고

일하시되 혼자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사역을 증거하신다는 것들이 오늘 본문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조금 알기 쉽게 화면으로 준비해 보았습니다.

예수께서 미처 알려주지 못하시고

제자들이 깨닫지 못한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제자들을 모든 진리로 인도하실 것이다 말씀합니다.

이 때 이 ‘모든 진리’는 스스로의 진리가 아니라 들은 것이며 장래 일인데 바로 예수의 것입니다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4절).

진리에 관해서는 8:31-32에서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예수를 믿고 그 안에 거하는 것이

제자가 됨과 동시에 진리를 아는 길이라고 일러주십니다.

그러니까 모든 진리가 예수의 것이라는 말이 성립이 됩니다.

또, 15절에서 아버지의 것이 다 예수의 것이라 하셨으니

성령께서 알리시는 것은 곧 아버지의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예수의 것을 알리심으로 인해,

즉, 모든 진리로 인도하심으로 인해

예수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14절).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자면,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님 누구 하나 단독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신다는 사실을 말씀을 통해 발견하게 됩니다.

그럼 이 세 분이 우리에게 알게 하시려는 진리는 무엇일까요?

조금 전에 살펴보았듯이,

이 진리는 예수의 것이며 아버지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거하는 자는 자유하게 됩니다.

결국 우리 인간은 무엇을 통해 영원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까?

돈입니까?

명예입니까?

권력입니까?

친구입니까?

우릴 자유케 하는 진리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16, 개역개정).

그리고 이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17:3, 개역개정).

그러니까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깨닫게 하시는 진리는 바로 독생자 예수와 그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믿어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한 신학자는 오늘 본문 13절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예수께서 진리를 가져오고 성육신하심으로 진리를 실제로 만드신다. 보혜사 성령께서는 이 진리를 열어 믿는 자들에게 진리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를 만드신다.”[1]

그러나 진정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고 믿기 위해서는 죄의 문제가 해결이 되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8장에 이르신 주의 말씀을 보시지요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8:34-36, 개역개정)

그러므로 성령께서 오셔서 죄에 대해 책망하십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6:8-9, 개역개정).

그러나 성령의 책망을 듣고 예수를 믿지 않던 죄에서 돌이킨 자는

로마서 8장에 이른 대로 예수 안에 있으면 우리가 더 이상 종이 아니요 하나님의 양자임을 증거하십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8:14-17, 개역개정).

방금 보신 14절 말씀에서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곧 오늘 본문 13절, 진리의 성령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는 말씀과 맞닿아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영,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모든 진리 가운데로 나가게 되는데

그 진리 가운데로 인도 받은 사람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상속자요 고난을 함께 받는 자로써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아까 읽으신 로마서 5장 말씀을 또한 보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롬 5:1-5, 개역개정).

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6-8)

결국 삼위일체 하나님,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님께서

보내시고

보냄을 받고

스스로의 말이 아니라 증거하는 이 모든 역사는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여러분과 저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나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불쌍한 영혼들을 아직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삼위일체는 하나님의 벌거벗음이다. 우리를 살리려고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신 계시의 정점이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벌거벗겨지는 수치를 개의치 아니하셨다. 삼위일체는 하나님에 대한 신비감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수수께끼가 아니다. 삼위일체는 인간의 이성에게 파악당하지 않으려는 하나님의 철옹성이 아니다.

눈을 감아본다. 나를 부르신 아버지, 범죄하고 떠났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금도 기다리시는 아버지를 본다. 나의 병든 마음과 육신을 치유하신 아들, 여전히 완악한 나를 위해 벌거벗겨져 십자가에서 살 찢고 피 흘리신 아들을 본다. 지금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중보 하는 성령님의 오열에 가득한 기도의 소리를 듣는다.

이렇게 역사하시는 삼위하나님은 이런 나를 구원하기 위해 한 마음으로 한 열정으로 한 눈물로 역사하고 계신다. 아버지와 아들과 영을 만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한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이상하다. 삼위일체라는 이 교리적 표현에 대해 이상하리만큼 눈물이 흐른다.”[2]

이상은 한 신문에 기고된 삼위일체에 대한 송병주 목사의 글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시고

죽음과 부활을 겪으신 주께서 다시 성령을 약속하신

그래서 그 성령이 오셔서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리고 그 사랑을 전하기 원하시기 때문에.

[1] Porsch states the content of v 13 concisely: “Jesus brings the truth, and makes it present through his coming into the world; the Spirit-Paraclete opens up this truth and creates the entrance into it for the believers,” George Raymond Beasley-Murray, John, Word Biblical Themes (Dallas: Word Pub., 1989). 283.

[2] http://www.newsm.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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