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050116 두려움의 자리를 떨치고 – 요14:23-29


우리는 지난 주 주께서 제자들,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강력한 명령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그것은 곧,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세상은 우리가 주의 제자임을 알게 된다고 말이죠.

지지난 주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았다면,

지난 주는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봤고,

이번 주는 함께 읽으신 대로 ‘나를 사랑하면’ 이라는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

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는 너희를 이만큼 사랑했으니까 너희도 날 사랑해라 하시면 간단할 텐데

왜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이해를 돕기 위해 오늘 본문 앞의 내용을 조금 살펴볼까요?

지난 주에 살펴본 대로 예수께서 서로 사랑해라 하고 유언처럼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그 말을 단번에 알아채지 못한 모양입니다.

13:36절에 보면 베드로가 바로 묻습니다.

‘대체 어디 가시는 겁니까?’

그러자 예수께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14: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하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답답합니다.

도마가 따져 묻죠

14:5 “…주님, 우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새번역).

14:8 그리고 빌립은 한술 더 떠서 아버지, 즉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떼 씁니다.

예수께서 뭐라고 답하십니까? 14:9절을 함께 읽어보실까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그 말씀 후에 보혜사 성령에 대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성령께서 너희와 함께 있을 거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18절 말씀대로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약속하십니다.

자, 지금까지 본문 앞의 내용을 훑어보았을 때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예수께서 제자들을 아이 달래듯이 어르는 것이 느껴지시나요?

제자들은 지금 굉장히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 것은 14:1의 예수의 말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3년이나 따르던 선생님이 갑자기 자기들 발을 닦으시더니 ‘나 너희가 못 올 데로 가니까 서로 사랑하고 잘 살아라’ 라고 말씀하시니까 무서워지는 거에요.

조금 심하게 이야기하면, ‘이 양반이 왜 이러나’ 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런 제자들을 보면서 예수께서

‘너희도 내가 가는 그 길을 알잖아’,

‘내가 아버지와 함께 있고 너희는 내 안에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마’ 하면서 다독이시는 겁니다.

그런데 28절에 보시면 제자들의 이 걱정이 단순한 걱정이 아님을 주께서 지적하십니다.

같이 읽어보실까요?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쉽게 말하면,

제자들이 예수를 사랑했더라면 예수께서 지금 가려는 그 길,

즉 십자가를 지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승천하시는 그 모든 일을 기뻐해야 하지만,

제자들은 기뻐하기는커녕

대체 어디로 가시는 것이냐 따져 묻고

근심걱정으로 우울해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 상태로 과연 서로 사랑하라는 주의 말씀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제자들에게 있어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애당초 마음에 남아있지도 않았습니다.

예수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도 되지 않을뿐더러

자기들 스승이 없다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되나 궁리를 했을 겁니다.

28절에 나타난 주의 말씀대로 제자들을 보자면,

이 사람들은 예수를 전심으로 사랑하고 따랐다기보다,

그래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중임을 이해했다기 보다,

자신들의 인생을 걸고 믿고 따르던 스승이 자신들의 곁을 떠난 후에 대한 걱정,

즉, 자기 자신들의 앞날에 대한 염려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께서 3년 동안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시면서 가르치셨던 것이 자기 앞날 걱정하는 것이었습니까?

어떻게 먹고 살지 걱정하는 것이었습니까?

어떻게 명예와 부를 누리고 살지 걱정하는 것이었습니까?

주께서는 염려함으로 키가 한 자나 더하겠냐고 말씀하면서 세상염려는 이방인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런 연약한 제자들의 모습에 주께서는 부드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고

사랑하지 않으면 지키지 않을 것이다.

다만, 예수께서는 이들만 남겨놓지 않으시고 보혜사를 약속하십니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여기에서 성령을 가리켜 보혜사 라고 하셨는데요,

영어로는 Advocate, 헬라어로는 Paraklētos 라고 합니다.

이 paraklētos 는 재판관 앞에서 누군가를 변호하는 사람, 즉 변호사를 지칭하는 법정용어입니다.[1]

이 재판관은 바로 하나님이시고

예수의 명령을 잘 따르고 지켰는가 아닌가에 따라 심판하신다고 말씀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12: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그러니까 성령께서는 이 피할 수 없는 심판과 재판관 앞에서 우리가 예수를 잘 따랐노라 칭찬받을 수 있도록 돕고 변호하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이 보혜사 성령께서 예수의 가르침을 깨닫게 하시고 지키게 하신다는 거에요.

예수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약속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걱정과 두려움과 좌절과 낙망이 아닌 평안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은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의 명령을 올바르게 지키고 따라서

마지막 날에 무서운 심판을 받지 않도록 해 주신다는 놀라운 약속이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예수를 사랑하여 그의 말을 지킬 때 하나님 아버지도 사랑을 부어주시고 결국 함께 거하겠다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23절).

이 말씀은 곧 요한계시록 3:20-21과 연결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예수를 사랑하여 그의 말씀을 지키면 예수는 물론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놀라운 초청 아닙니까?

그런데 이 놀라운 초청 전에 눈 여겨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계 3:19, 개역개정)

회개가 반드시 먼저 일어나야 우리는 예수와 함께 먹고 마실 수 있게 됩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내가 그 사람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면 멈추고 돌아서서 다시는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교회에 출석은 하고

성도라 불리지만

주의 말씀을 지켜 행하려 하지 않고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은

감히 자신이 예수를 사랑한다 말할 수 있을까요?

마지막 날에 주의 심판의 자리를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주께서 자신과 함께 거하지 않으심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사랑한다면,

그의 말씀을 지키길 기뻐한다면,

두려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주를 사랑하기로 결단하는 순간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가 주의 말씀을 따라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닫게 하십니다.

14:14-17을 함께 읽어보시겠습니까?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함께 읽으신 말씀 그대로 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주를 더욱 사랑하도록

그래서 주의 계명을 잘 지키게 해달라고 기도하시면

주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가 그렇게 주를 사랑할 수 있도록 일하실 것입니다.

세상은 알지 못하는 그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며 우리 속에 계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은

이 거친 세상에서 실패할까 봐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허락하신 주의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계속 걱정과 근심 가운데 있을 것인가

아니면 성령이 주시는 평화를 누리며 예수를 모시고 살 것인가는

주를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1] John D. Barry, Michael S. Heiser, et al., Faithlife Study Bible (Bellingham, WA: Logos Bible Software, 2012), Jn 14:26.

Featured Posts
잠시 후 다시 확인해주세요.
게시물이 게시되면 여기에 표시됩니다.
Recent Posts
Archive
Search By Tags
Follow Us
  • Facebook Basic Square
  • Twitter Basic Square
  • Google+ Basic Square

(22704) 인천 서구 승학로 551, 207호(검암동, 동곡프라자),  withomc@gmail.com

© 2024 한마음교회 . Proudly created with Wix.com

후원 및 헌금

국민 658137-01-009649

​기독교대한성결교회한마음교회  

bottom of page